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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GUE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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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는 장르와 분야를 불문한 다양한 인물을 연구하면서 작업의 근간을 형성하곤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에드워드 사이드, 프리모 레비, 윤이상, 김산과 님 웨일즈, 서경식, 쟝 주네, 조지 오웰 등의소설가, 혁명가, 화학자, 작곡가 등 관심 인물의 다양성은 그의 작업 스펙트럼만큼이나 광범위하다. 이들의 삶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확장 가능한 공감대를 발견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작품 생활과 분리된 공부가 아니라, 반대로 그 일부가 된다. 즉, 작가는 인물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경험하고, 이를 공감각적인 ‘여기 지금’으로 바꾸어 간다.

ARTIST HAEGUE YANG EDITOR DANBEE BAE PHOTOGRAPHER YESEUL JUN
THIS PROJECT <PRINTS> WORKED WITH RAWPRESS
양혜규 작가가 최근 돌아보고자 한 다섯 권의 책
1. 『단식 광대』,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이 단편에서는 ‘단식하는 행위’가 예술로 통용되는 설정을 배경으로 어떤 예술가의 상을 그리고 있어요. 한때 인기 절정이던 단식 행위의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단식 예술가는 대중의 관심 밖이 되죠. 요즘 같이 재해와 다른 사회적 현상이 강렬하여 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소홀할 때 과연 예술가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돌아보게 하더군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커서, 최근에 학생들과 수업 과제로 같이 읽었어요.”
2.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강렬했어요. 모든 전시 일정이 미뤄지면서 오랜만에 한가롭게 책장을 뒤적이다가 동생이 사다 놓은 이 책을 발견했죠. 이렇게 특이한 소설은 처음 읽어봐요. 스페인 태생이지만 캐나다 이민자인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 원작자로 널리 알려졌죠.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1904년부터 1981년까지 포르투갈과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 세기에 가까운 인간사를 현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술적 리얼리즘을 펼쳐 보여줘요. 사랑 뒤에 남겨진 슬픔과 상실을 경험한 세 남자가 이후의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그려지지만, 서사의 구조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에요.”
3. 『순수 박물관』, 오르한 파묵
“소설가 오르한 파묵을 이해하려면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사회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해요. 특히 근대 터키를 생성시킨 비종교적인 어퍼 미들 클래스는 소설의 주인공이자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를 잘 설명하죠. 『순수 박물관』은 파묵이 최초로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삼은 소설이에요. 주인공 남자는 단 44일 동안 함께 한 여자를 평생 사랑하며 그녀와 관련된 모든 추억의 물건, 냄새, 소리 등을 수집하고, 결국 그 박물관 안에서 살게 됩니다.  파묵은 책의 집필과 박물관의 설립을 같이 준비합니다. 전 세계 박물관 5,723군데를 다니며 이 박물관의 형식을 고심하지요. 기억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만드는 공감각적인 구성이 제겐 와닿는 지점이에요. 실제로 파묵은 주인공이 수집했을 법한, 박물관에 소장될 물건들을 집필실에 두고 소설을 썼어요. 실제와 허구는 이렇게 함께 ‘쌍’으로 직조되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이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이스탄불에 위치한 순수 박물관을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4.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의 경우의 그의 책이 아니라 소설가 자체를 소개하고 싶어요. 그에겐 ‘에밀 아자르’라는 또 하나의 필명이 있었고, 그가 권총으로 자살할 때까지 아무도 에밀 아자르의 진짜 정체를 몰랐어요. 두 개의 이름, 두 개의 정체성을 지닌 소설가. 저는 보통 외모에 그다지 현혹되지 않는 편인데, 가리의 경우 부리부리한 코와 지중해처럼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코사크 계통의 유대인의 외모가 마음에 남습니다. 가리는 모친과 프랑스로 이민을 왔고, 유대인 공동체로부터의 도움도 마다한 채 단 둘이 외톨이처럼 살았어요. 프랑스에 크게 이바지할 아들의 미래에 대한 모친의 확신과 사랑으로 질식할 것 같은 유년기를 살았고, 공군장교, 외교관, 유명 작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문학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였지만, 누구도 살아 생전에 그의 또 다른 정체성을 알지 못했어요. 그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반쪽이 같은 가리의 정체성은 제게 매우 매력적인 블랙홀 같아요. 저는 가리의 이교도적인 외모에서 깊고 의미심장한 고독을 봅니다.”
5.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모음 2001-2020』, 양혜규
“마지막은 제 작품과 연관된 책입니다. 지난 18년 간 발표된 글 중에 총 34편의 글을 선정해서 수록한 선집이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 O2 & H2O》 전시에 맞춰 함께 출간되었어요. 앞서 인터뷰에서 2002년도 작품 <공기와 물>을 소개했어요. 이 선집의 첫 번째 글이 2001년도부터 시작해요.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모음 2001-2020』에 수록된 글은 제가 쓴 글이 아니라 양혜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제 작품을 논하는 비평 선집이에요. 시간순으로 글을 엮었기에, 이 책을 읽으시면 양혜규라는 작가의 성장 과정과 작품의 전개, 변화, 흐름을 자연스레 알 수 있어요. 글의 형식은 다양합니다. 미술사적인 접근도 있고, 대담, 사전 형식 등으로 종류가 다양해요. 한국에 본격적인 자료집이 없었다는 부채 의식 때문에 오랫동안 제 숙원 사업이었답니다.”
〈오행 비행〉(2020) 설치 전경, Ⓒ홍철기